제4 정치이론으로

제4 정치이론으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세계화와 그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근대주의적(포스트-모더니스트적) 원리에 대한 우리의 반대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쓰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모든 반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들(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물론 파시즘)이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싸우려 했으나 패배했다. 부분적으로는 끝에 가서 이기는 것은 본디 악이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그들 내부의 모순과 한계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의 반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성취에 대해 심도깊은 수정을 완수해야할 때이다. 무엇이 그들의 긍정적 측면인가? 그들이 반자본주의적며 반자유주의적인 것은 물론 반코스폴리탄적이고 반개인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특징들은 미래의 이데올로기에 수용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도그마는 근대적이고, 무신론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이다. 그것들은 버려야 한다. 반대로, 사회적 연대, 사회적 정의, 사회주의와 사회에 대한 일반화된 전체론적 태도는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주의적이고 근대적인 측면을 분리하고 거부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특정 지점에서는 율리우스 에볼라와 같은 전통주의자에게까지 이르는) 제3의 위치의 이론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있었다. 우선 인종주의, 제노포비아와 쇼비니즘이다. 그것은 단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이론적이고 인류학적으로 모순되는 태도다. 종족 간의 차이는 우월이나 열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이는 인종주의적인 감상 없이 수용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다른 종족 집단 간 적용가능한 공통된 척도는 없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판단하려할 때는 그 자신의 표준을 적용하며 이는 지적인 폭력을 범하는 것이 된다. 그같은 태도가 정확히 세계화, 서구화는 물론 미제국주의의 범죄인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그것의 물질주의적, 무신론적이고 근대적인 특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우리가 제3의 위치의 도그마에서 인종주의적이고 협소한 민족주의적 측면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정치이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이를 제4 정치이론이라고 부른다(첫째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도전해야할 자유주의, 둘째가 고전적 형식의 공산주의, 셋째가 민족사회주의와 파시즘).  이 이론의 면밀함은 서로 다른 반자유주의 정치이론(공산주의와 제3의 위치 이론) 간 교차성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주의, 무신론, 진보주의와 근대주의가 없는 사회주의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없는 파시즘을 대변하는 민족볼셰비즘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 심도깊이 수정된 과거의 반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기계적인 추가로는 실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이는 단지 근접한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전진하여 전통적이며 전근대적인 영감의 원천에 호소해야 한다. 우리는 플라톤주의적인 이상국가, 중세적 위계사회와 (그리스도교적, 이슬람적, 불교적, 유대교적이거나 힌두교적인) 규범적인 사회정치시스템의 신학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 전근대적인 원천은 민족볼셰비즘의 종합에 있어 매우 중요한 발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이론을 위한 새로운 이름을 찾아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제4 정치이론"은 꽤 적절하다. 이는 이 이론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보다, 오히려 무엇이 아닌지를 알려준다. 따라서 이는 도그마라기보다 제안이고 호소이다.
정치적으로 우리는 좌익과 우익 간은 물론 종교적이거나 (예컨대 생태운동과 같은) 다른 반근대 운동 간 의식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흥미로운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협력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우리가 유일하게 고집하는 것은 반공주의는 물론 반파시스트적인 편견을 한쪽으로 치우라는 것이다. 이 편견들은 자유주의자와 세계화론자의 손에 들려 그들의 적들을 가르는 도구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공주의만이 아니라 반파시즘도 강력히 거부해야 한다. 둘 모두 세계적인 자유주의 엘리트의 반혁명 도구이다. 동시에 우리는 무슬림 대 그리스도인, 유대교인 대 무슬림, 무슬림 대 힌두교인 등, 어떤 종류의 종교 간 대립도 강력히 반대해야 한다. 종파적인 전쟁과 증오는 반그리스도 왕국이 그 자신의 유사종교인 종말론적인 패러디를 도입하려는데 봉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파, 좌파와 종교로 하여금 공동의 적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위해 단결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정의, 민족주권과 전통적 가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세 원리이다. 이것들을 한데 묶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을 극복하고 싶다면 노력해야만 한다.
나아가 대상 즉, 제4 정치이론의 실행자를 정의해볼 수 있다. 공산주의의 경우 그 중심에는 계급이 있었다. 제3의 위치 운동에는 인종 또는 민족이 있었다. 종교의 경우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이다. 어떻게 제4 정치이론이 대상의 다양성과 차이를 다룰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제4 정치이론의 대상이 현존재(거기에 있음)라는 하이데거적인 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는 존래론적인 개발을 위한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이지만 극도로 심오한 사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존재의 본래성이냐 비본래성이냐이다. 제4 정치이론은 실존의 본래성을 주장한다. 따라서 이는 사회적, 경제적, 민족적,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종류의 소외에도 반테제이다.
그러나 현존재는 구체적 사례이다. 어떤 인간이나 문화든 그들 자신의 현존재를 가진다. 그들은 서로 다르나 항상 현존한다.
미래의 창조 과정을 위해, 공통전략의 면밀함까지 나아가도록 수용하는 건 우리의 요구와 비전에 맞아야만 한다. 따라서 사회적 정의, 민족주권과 전통적 영성은 실마리가 되어준다.
나는 제4 정치이론, 민족볼셰비즘과 유라시아주의가 우리 인민들, 나라들과 문명들에 있어 크게 쓰일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 키워드는 모든 점에 있어서의 "다극성"이다. 지정학적, 문화적, 가치론적, 경제적으로 등.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누스의 누스(지성)의 중요한 비전은 우리의 이상에 일치한다. 지성은 그 자체 모든 종류의 차이를 지니고 있기에 단일하며 동시에 복수이다. 균일하지도 혼종이지도 않지만, 그 독특성에서 그와 같이 받아들여진다. 미래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 지성적일 것이다. 다극성, 다양성은 불가피한 갈등이 아니라 부유함과 귀중함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많은 문명들, 많은 축들, 많은 중심들, 많은 가치의 모음들이 하나의 지구 안에 사는 하나의 인류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누가 이와 같은 목표에 반대하는가? 획일성, 유일사상, 하나뿐인 (미국적) 생활방식, 하나의 세계를 부과하려는 이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위해 물리력과 신조를 동원하고 있다. 그들은 다극성에 반대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반대한다."